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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종교 | 대종교 삼일원 최윤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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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1 작성일 16-04-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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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삼일원 최윤수 원장

모든 종교는 하느님을 믿는 분파···타 종교도 존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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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수 삼일원장이 나철 대종사가 펼친 일제 강점기 애국운동과 대종교의 정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대종교의 나철 대종사가 조천한 지 올해로 100년이 된다. 그는 민족의 국운이 쇠퇴하던 시기에 민족의식을 일깨워 청산리전투와 봉오동 전투 등에 참가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애국열사를 배출한 민족의 정신적 지도자인 동시에 독립운동의 아버지로 불린다. 나철 대종사 조천 100주년을 맞아 대종교 최윤수(58) 삼일원장으로부터 나철의 생애를 돌아보고 그의 정신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 나철 대종사를 설명한다면

대종사는 국운이 풍전등화인 1863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나 29세에 장원 급제한 수재였다. 관료사회의 비리를 알게 되자 3년 만에 관직을 버리고 낙향했고, 이에 고종이 징세서장을 제수했으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동학혁명, 청일전쟁, 명성왕후 시해와 기울어 가는 국운 앞에 구국의 뜻을 세웠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결사대를 조직해 을사 5적을 제거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기도 했다. 이어 대종사는“나라는 망했지만 정신은 살아있다”는 자각과 함께 민족을 살리기 위해 대종교를 중광했다. 최후에는 일제의 대종교 탄압을 자신의 부덕으로 여기고 순교를 결행했다.

- 일제 강점기 대종교 역할 

대종교는 우리 겨레 고유의 종교를 부활시키고 주체적인 역사관을 정립해 우리 겨레의 정체성을 확보했다. 대종교의 노력으로 밝혀진 우리 겨레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알게 된 우리 겨레는 단군의 자손이고 문화민족이라는 자부심으로 한 겨레라는 동족의식을 가지게 됐다. 동족의식을 통해 상해 임시정부의 인사들은 각자 종교와 사상이 달라도 독립운동을 같이했으며 개천절과 같은 경절을 기념했다.

동창학교·박달학원·백산학원·대종학원을 세워 간도 지방에 거주하던 민족을 교육시켰다. 국내에서는 대종교 인사들이 조선어학회의 중심인물들이 되어 한글 연구에 힘써 한글의 문법을 정립했다. 대종교는 일제 강점기 초기의 무장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청산리 전투는 대종교 종사인 서일 북로군 총재의 지휘 아래 대종교도였던 김좌진·이범석 장군과 대부분이 대종교도였던 독립군들이 수행한 전투였다.

- 나철의 존재 의미

대종사는 이름이 두 가지다. 첫째는 대종교 중광 이전까지 독립투사로 살았던 나인영이고 두 번째 이름은 중광 이후 개명한 나철이다. 을사조약을 체결한다는 소식에 을사오적을 처단하려던 거사는 전국을 흥분시켰고 실의에 잠겼던 한국인들에게 민족의식과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무력으로 하는 항일에 한계를 느낀 나철은 일본에 건너가 한국, 일본과 중국이 동맹을 맺고 서양에 대적하자는 동양평화론을 주장했다. 일본의 종교 탄압에 항거한 1916년 구월산 삼성사에서의 그의 순교는 이후의 항일 무장 투쟁의 기폭제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종사의 숭고한 순교 정신은 민족을 하나로 묶어 청산리 무장투쟁의 전개로 이어졌다. 그래서 홍암 나철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니 그는 독립운동의 태두라는 첫 번째 의미를 가진다.

나철은 우리나라 고유 종교인 신교를 계승했다. 상고 단군시대부터 전승돼온 하느님 신앙을 계승해 전파했으며 그 자신도 독실하게 하느님을 경배하는 생활을 했다.

나철은 우리 고유의 도를 계승했다. 일제와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해 유교주의가 나라를 수호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이데올로기로 판명되던 시대였던 한말은 대종교를 비롯해 천도교, 증산교 등 여러 종교와 사상들의 모습으로 전통 도학이 꽃피던 시대였다. 그의 두 번째 의미는 우리나라 고유의 종교를 계승해 중광한 데 있다.

- 대종교를 중광하게 된 동기

을사오적 주살과 외교적 노력의 독립운동이 무위로 끝나자 그는 나라는 망했어도 도는 존재한다고 하면서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독립을 생각하게 됐다. 그러기 위해 국조인 단군 왕검을 중심으로 한 고유 종교의 필요성을 깨닫게 됐다.

이러한 고유 종교의 설립은 제국주의적 침략을 일삼고 있는 일본에 대한 구국운동의 한 방편이 되기도 했다. 단군을 구심점으로 하느님을 모시는 겨레 고유의 종교를 세워 대일 투쟁에 참여하면서 또한 우리의 것을 찾으면 설사 나라는 망해도 겨레의 정신과 문화는 보존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단군시대부터 전승돼온 한국고유 종교를 중광하고 자신의 이름을 나철로 바꿨다. 철(喆)은 밝은이라는 뜻이다.

- 나철을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

지금은 국제화라는 미명 아래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문화와 종교가 시련을 맞고 있다. 한편, 물질적으로 풍족해졌는데도 부가 정의롭게 분배되지 못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행하게도 먹고사는 산업만을 추구해 참다운 도를 지닌 우리 전통 종교가 더욱 시련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주체성을 회복하면서 세계적인 추세를 능동적으로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나철과 그가 중광한 대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돌아봐야 한다. 나철이 대종교를 중광하면서 고유의 사상과 역사, 문자를 회복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뜻을 굽혔다면 육신이 편하게 살았을 텐데도 참된 진리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종교적인 수행자의 길을 걸었으니 요즘 같은 물질주의 시대에 사는 우리들의 귀감이 된다.

독립 운동가이며 대종교 교조인 홍암 나철 대종사
- 나철 대종사의 사상을 소개하면 

대종사는 하느님의 뜻 아래서 세계 모든 종교와 사상이 하나로 통일돼 홍익인간 이화세계하는 세상이 온다고 믿었다. 세계가 한 도로 통일되기를 다음과 같이 염원했다.

‘도의 근원 찾아보면 가닥가닥 한배 빛
선가의 하늘신선, 불가의 제석 숭배
유가의 상제, 예수교의 여호와, 이슬람의 알라
실상은 한 하느님

하느님께 호소하여 천국을 새로 열어
한 나라 한 종교로 큰 지구를 통할하며
대소 강약 너나를 한 집에 일체 사랑
한 세계 한 도 빛에 하늘과 사람 함께 만만세’

대종사는 다른 종교도 한 하느님을 믿는 분파기 때문에 영원한 도나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 다른 종교도 존중하라고 하는 포용력 있는 규율을 제정해 반포했다.

- 독립운동의 선구자로서 인식이 부족한 느낌이 드는데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극심한 탄압이 있었고 광복 후에는 정치권력에 의해 견제를 받아 교세가 약해졌다.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중의 하나가 아닌 중립적인 노선인 대종교는 남한 역대 정부에 의해 철저하게 외면됐다. 그 결과로 대종사의 독립운동에 대한 인식에 부족한 면이 있었다. 다행히 최근 들어서는 대종사의 독립운동이 여러 각도로 조명되고 있다. 고 박성수는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이란 책을 펴냈고, 보성군의 홍암 나철 선양회에서도 생가 보존과 기념관 설립 등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조천 100주년 추모 사업으로 6월과 9월에 홍암 대종사의 가르침을 교육하는 종리대학을 열 예정이다. 아울러 만주 대종교 독립운동 유적지 순례와 학술대회를 통해 대종사를 일반에 널리 알릴 예정이다.   

- 자랑할 만한 대종교인들을 소개한다면 

주시경은 우리말의 이름을 한글로 정했으며‘국어문법’과 ‘말의 소리’를 펴냈다. 1914년 출간한 ‘말의 소리’는 한자어를 쓰지 않고 순우리말만 사용한 책이다.

주시경의 정신은 후학들에게 계승돼 1921년 창립된 한국 최초의 민간 학회인 조선어연구회와 그 후신인 조선어학회에서 그 결실을 맺었다. 한글 연구에 공헌한 학자들인 이극로·김두봉·이병기·이희승·정인보·최현배 등은 모두 대종교인이다. 이극로는 1929년부터 해방까지 ‘조선어사전’의 편찬집행위원, 한글맞춤법 제정위원, 조선어표준어 사정위원 등을 역임했다. 정인보와 장도빈 등은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국학연구를 했고, 최현배는‘우리말본’과 ‘한글갈’ 등을 저술하며 순 한글 쓰기 운동을 전개했다.

상해 임시정부 산파역을 했던 신규식, 외교 및 독립운동을 지원한 박찬익·조성환·유동열·조완구·이상설, 만주 무장 독립 투쟁을 이끈 대표적 인물로 이동녕·현천묵·계화·윤정현· 황학수·김승학·홍범도·김혁·김좌진·윤복영·이범석·여준·이홍래·정신·이동하·한기욱 등이 있다. 상해 임시정부의 국무위원급 이상으로 참여했던 인물은 이시영·박은식·이동녕·신규식·이상룡·조완구·박찬익·조성환 등이 있다. 그 외에 삼균주의 조소앙, 신민족주의 안재홍, 일민주의 안호상 등이 있다.

최윤수 삼일원장은 대종교 교육기관의 책임자다. 최 원장은 전주고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 한국과학기술원 석사, 포항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대덕연구단지의 한 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일요일엔 대종교 교리를 강의한다.

그는 고교시절부터 장자 등 동양 고전을 많이 읽었고 대종교 겨레 얼 3대 경전을 탐독했다. 1985년 ‘단’이란 책을 읽고 대종교를 신앙하게 됐다. 자연히 동양사상에 빠져들었고 우리민족 고유의 사상을 연구했다. 박사 과정을 끝내고 ‘삼일신고와 참전계경의 구성비교’,‘삼일신고와 참전계경에서의 삼일원리’,‘우리겨레의 하느님 신앙 ’, ‘겨레의 천신 하느님 신앙’,‘강우의 대종교관 ’ 등의 논문을 발표했고 편저서로는 ‘참전계경’등이 있다.
 
정영찬 기자

주소 : http://www.jknews.kr/content/html/2016/04/01/201604010009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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